원효의 성은 설씨薛氏, 법명法名은 원효,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다. 아버지는 내마奈麻 담날談捺이며, 경상북도 압량押梁 출신이다.
15세경에 출가하여 스스로 경전을 공부하였으며, 완산주完山州에 있던 보덕普德이나 자장慈藏으로부터 불도를 배웠을 것으로 추정한다. 34세 때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가 요동에서 고구려군에게 잡혀 귀환하였고, 10년 뒤 다시 의상과 함께 해로를 통하여 당나라로 떠났다가 여행 도중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서 돌아왔다.
655년에서 660년 사이에 태종무열왕의 둘째딸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으며,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속인행세를 하였다. 〈무애가 無㝵歌〉를 지어 노래로 대중에게 불교의 이치를 알렸고,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과 행동으로 교화활동을 폈다. 그의 사상은 일심사상, 무애사상 화쟁사상으로 대표된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은 20부 22권이 있으며, 현재 전해지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100여 부 240권이나 된다.
원효의 저서 가운데 3권 1책의 활자본으로 고려시대 간행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과 6권 1책의 활자본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된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이 수록되어 있다.
《금강삼매경론》 원효는 《금강삼매경》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3권으로 축약하였는데 대의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대의를 말하는 글은 시종 하나의 운율로서 전편의 사상을 간결하게 말하면서 심오한 불교사상을 남김없이 담았고, 둘째는 경의 종지(宗旨)를 밝혔는데, 이것은 원효의 불교관 전체를 반영한 것이고, 셋째는 《금강삼매경》이라는 제명을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한 것이다.
《대승기신론소기회본》은 《대승기신론소》와 《대승기신론별기》를 합쳐서 편찬한 책으로 《대승기신론》에 대한 원효의 주석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대승기신론별기》에 누락된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과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이 《대승기신론소기회본》에는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