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한의 본관은 장기長鬐, 자는 맹문孟文, 호는 화산華山 혹은 운수산인雲水山人이다. 아버지는 정광흠鄭光欽이다. 성리학자로 명성이 높은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80년(정조 4)에 사마시에 응시하여 합격은 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6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1830년(순조 30) 정규한의 아들 정수린鄭秀麟이 편집·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1830년 송흠대宋欽大이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825년 정재풍鄭在豊이 지은 발문이 있다.
권1에 사詞 7편, 부賦 2편, 시 185수가 있다. 사 가운데 〈신추재야경新秋齋夜景〉은 보살만菩薩蠻에 가사를 넣은 것이다. 시에는 주희朱熹의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의 영향을 받은 〈추유화양동秋遊華陽洞〉 10수가 있다. 벼슬 보다는 화산華山에 은거하여 성리학 연구에 전념한 영향으로 철학적인 기풍이 농후하고, 은거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노래한 시가 많다. 〈관물觀物〉로 제목을 붙인 작품이 자주 보이며, 〈팔음시八音詩〉나 〈십이진시十二辰詩〉 등의 이체시異體詩도 있고, 저자가 평소 산수를 좋아하여 자연을 벗 삼아 읊은 시도 있다.
권2∼4에는 서書 22편이 있다. 서는 주로 성리학·『주역』·예학에 관한 것으로 스승인 송환기에게 묻는 글도 있으며, 박종열朴宗悅·정만석鄭晩錫·정재면鄭在勉·정재풍·정재응鄭在應 등에게 답한 글들도 있다. 이중 박종열과의 편지에는 『주역』과 『중용』에 대한 성리 철학적 견해가 들어 있는데, 그 내용이 방대하여 당대인의 관심을 끌었다. 권4의 후반부에는 스승 송환기의 시호에 대한 것, 유계兪棨·정시鄭蓍 등의 제사에 대한 것, 동산서원東山書院과 천동서원泉洞書院의 사액賜額에 대한 것들이 있다.
권5에 서序 6편, 기記 7편, 발跋 1편, 잡저 7편, 잠箴 2편, 명銘 9편, 송頌·전箋·전책殿策 각 1편, 상량문 3편이 있다. 잡저는 성리 철학을 논하고 있거나, 훈학訓學·향약절목鄕約節目에 대한 것이다. 〈전책〉은 1790년(정조 14)에 지은 것으로, 당대인에게 널리 알려진 글이다.
권6에는 제문 20편, 축문 2편, 행록 4편, 묘갈명 1편, 전傳 1편, 부록으로 행장·묘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