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근의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권진權晉, 자는 가원可遠 사숙思叔, 호는 양촌陽村 소오자小烏子이다. 아버지는 검교정승 권희權僖이다.
1368년(공민왕 17) 성균시를 거쳐 이듬해 급제해 춘추관검열 성균관직강 예문관응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성균관대사성 지신사知申事 등을 거쳐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이숭인李崇仁의 무죄를 주장하다가 유배생활을 했다. 조선이 건국된 후 다시 관직에 등용되어 예문관대학사藝文館大學士 중추원사를 거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으로 화산군花山君에 봉군되었다. 정종 때는 대사헌으로 사병제도 혁파를 주도했고,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으로 길창군吉昌君에 봉군되고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
재직 기간 동안 명나라와의 외교문서 작성이나 개혁정치의 선봉에 섰으며, 유생교육과 정부 교육 정책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힘썼다. 성리학자로서 새로운 왕조의 성리학 연구 기틍을 잡았으며 《동국사략東國史略》 편찬과 《입학도설入學圖說》 《오경천견록五經淺見錄》 등의 작품을 남겼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40권 10책의 목판본으로 조선 초기에 둘째 아들 권도權蹈가 편집 간행한 것이 초간본이며, 후대에 복각되었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다.
시는 모두 980수인데, 여기에는 다른 사람의 원운原韻과 차운次韻은 포함되지 않았다. 시 가운데 응제시 24수는 1396년(태조 5)에 자원해 명나라에 간 저자가 조명외교朝明外交의 표전문제表箋問題를 해결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작품이며, 사료적 가치도 뛰어난 작품이다. 문은 모두 305편인데, 〈동국사략전〉과 〈동현사략〉을 제외한 것이다. 〈동국사략전〉은 신라 왕조에 관한 사실史實 가운데에서 28개항을 뽑아 저자의 비판적인 생각을 담아 편찬한 사론집史論集이며, 〈동현사략〉은 고려 후기의 명현 24인의 간략한 사적을 적은 전기집傳記集이다. 잡저는 옥책玉冊 애책哀冊 사서謝書 원문願文 전부언田父唁이 각각 1편씩이고, 책문제策問題가 6편이다.
이 외에도 〈주자발鑄字跋〉은 활자 내지 인쇄술, 〈천문도시天文圖詩〉는 천문, 〈역대제왕혼일강리도지歷代帝王混一疆理圖誌〉는 지리, 〈논문과서論文科書〉 〈학칙발學則跋〉 〈제주향교기提州鄕校記〉 등은 학교 교육 및 과거 제도 등에 관한 글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고, 〈영주부서문루기寧州府西門樓記〉와 〈사불산미륵암중창기四佛山彌勒庵重創記〉 등은 지역의 많은 유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