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응환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命瑞, 호는 물기재勿欺齋이다. 강희맹姜希孟의 9세손으로 전라도 무송(茂松 : 지금의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경과정시慶科庭試에 합격하여, 부장部長·사헌부감찰·칠원현감漆原縣監·초계군수草溪郡守·대구영장大丘營將·고령진첨사高嶺鎭僉使·창성부사昌城府使·동래부사 등을 지냈다. 창성부사가 되어서는 부근의 지도를 작성하여 불의의 변에 대비한 바도 있다.
2권 1책. 목활자본으로 책 머리에 1911년 송병순宋秉珣이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912년 기우만奇宇萬·강천수姜天秀 등이 지은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61수, 가歌 2편이다. 시는 저자가 초계군수草溪郡守·대구영장大邱營將 등 외직에 재직하면서 친지들과 화답, 증여한 작품 및 〈설야우음雪夜偶吟〉·〈영분매詠盆梅〉 등 서정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무인으로서 기개를 드러낸 〈무호가武豪歌〉와 요동의 옛 땅을 되찾지 못하는 통분함과 애국정신을 표현한 〈창성감고가昌城感古歌〉는 모두 국한문혼용체로 지은 시가로서 당시의 시가문학을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권2에 전문箋文 10편, 장계狀啓 4편, 서書 5편, 기記 3편, 잡저 15편이 있다. 장계에는 1793년(정조 17) 동래수군절제사東萊水軍節制使로 재직하면서 당시 동래지역의 군정軍丁의 상황 및 폐단을 상세하게 보고한 〈계축추래영군정계癸丑秋萊營軍丁啓〉가 주목된다. 또한 1781년 역마驛馬를 환점換點했다는 누명을 입고 의금부義禁府의 심문을 받고 있을 때 올린 원정原情 및 2년 후 초계군수로 재직하던 중 이전 근무지인 칠원漆原의 환곡還穀 문제로 의금부의 심문을 받을 때 올린 원정 등이 흥미를 끈다. 잡저에는 염파廉頗·번쾌樊噲·사마의司馬懿·최호崔浩 등 고대의 명장名將들에 대해 장단점을 논평한 12편의 글, 1781년 의금부의 취조를 받을 때의 일기 등이 있다. 또한 〈기해동어장감착청어봉진시사실대개己亥冬漁場監捉靑魚封進時事實大槩〉는 1779년 어장漁場의 감독관으로 웅천熊川에 파견되어 청어를 진상하는 일을 주관할 때의 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그밖에 지방관으로 취임해 인륜·환곡·제방 등 행정 전반에 걸친 지침을 관할 지역의 각 고을에 포고한 〈유각동諭各洞〉 등 당시의 여러 가지 제도와 생활 풍습 등을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다수 실려 있다.
부록에는 저자의 치적을 조정에 보고한 순찰사의 장계狀啓, 이조의 관문關文, 상급관청이 하급관청에 내리는 공문서 등 7편과 조정에서 저자에게 보낸 유문諭文 등 2편, 각 고을 주민들이 저자의 선정을 기린 송덕비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고령진의 백성들이 지은 가사 〈고령진민선정가高嶺鎭民善政歌〉는 국한문 혼용체로 지은 시가로서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