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언광(沈彦光, 1487 ~ 1540)의 시문집이다.
심언광의 본관은 삼척三陟, 자는 사형士烱, 호는 어촌漁村이다. 아버지는 예조좌랑 심준沈濬이며, 어머니는 사직 김보연金普淵의 딸이다.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151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그 뒤 사가독서를 하였고, 지평持平 정언正言 장령掌令 홍문관교리 집의執義 등의 청요직을 두루 지냈다. 이후 대사간 이조판서 공조판서를 역임하다가 김안로金安老의 비행을 비판하면서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우침찬에 올랐다. 인종 즉위 후 대윤大尹 일파가 집권하면서 삭탈관직되었다.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언관을 역임하면서 국방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고,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하여 심정沈貞을 비롯한 권간들의 횡포를 탄핵하였다. 1530년 대사간으로 있을 때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적극 주장하여 실현시켰으나 김안로가 조정에서 실권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조직하고 대옥大獄을 일으켜 사림들을 모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외손녀를 동궁비로 삼으려 하자 서로 사이가 나빠져 김안로의 비행을 폭로하고 비판하면서 오히려 좌천되기도 했다.
13권 4책 목활자본으로 1682년(숙종 8) 5세손 심징沈澄이 처음 간행하고, 1889년(고종 26) 후손 심양수沈陽洙 등이 증보,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송시열宋時烈의 서문, 1682년에 박세채朴世采가 쓴 어촌신묘사후漁村辛卯事後, 1683년에 이민서李敏敍가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687년에 이선李選이 지은 부록발, 홍직필洪直弼의 제후題後, 1685년에 심징이 지은 발, 1889년에 심양수沈陽洙 심승택沈升鐸 심성규沈成圭 등이 지은 발문이 있다.
권1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에는 세계 연보 유묵, 뒤에는 시 118수가 있으며, 권2∼7에는 시 640수가 있다. 시체는 다양하며, 차운시를 비롯하여 송시와 증여시, 자연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에서 명소를 다니며 읊은 기행시까지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금강산에서 읊은 〈동관록東關錄〉, 평양 지방을 유람한 〈서정고西征稿〉, 함경도관찰사 시절의 〈북정고北征稿〉, 내직에 있으면서 지은 〈관반시잡고館泮時雜稿〉 등이 있다.
권8은 소疏 6편과 차箚 6편이 있다. 상소문 가운데 〈십점소十漸疏〉에서는 왕이 정치를 할 때 직언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하늘의 이변에 대해 속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대처하라는 등 열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권9는 제문 6편, 진향문進香文 책문冊文 애사 조문 묘지 각 1편, 가요 2편, 부賦 9편, 송頌 명銘 묘갈명 묘지명 기記 각 1편, 문文 3편, 서序 2편, 논論 2편이 실려 있다. 부 가운데 〈대마도부對馬島賦〉에서는 대마도의 어려운 경제여건을 생각하여 구휼한 내용과 함께 그들을 제어할 여러 방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명의 〈보루각정시의명報漏閣定時儀銘〉은 중종시대 창경궁昌慶宮의 동쪽에 새로 집을 짓고 세종조의 옛 법식대로 물시계를 만들면서 지은 것이다.
권10은 〈귀전록歸田錄〉으로 시 52수와 〈의영사시擬詠史詩〉 42수가 수록되어 있다. 〈귀전록〉에 실린 시는 저자가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돌아온 뒤에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느낀 감회를 읊은 시이며, 〈의영사시〉는 태공太公 이제夷齊 등의 여러 인물에 대한 평을 하면서 지은 시이다.
권11~13은 부록으로 이지렴李之濂이 쓴 행장 1편, 상언문上言文 3편, 분황문焚黃文 1편, 이의철李宜哲이 쓴 시장諡狀 1편, 송환기宋煥箕가 쓴 신도비명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