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자의 본관은 해주海州, 초명은 종유宗裕 또는 안安이며, 자는 수덕樹德, 호는 동산수東山叟이다. 아버지는 우복야 최민崔敏이다.
1212년(강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상주사록尙州司錄 국자감학유國子監學諭 등을 지냈다. 무신정권기 최이崔怡가 이규보李奎報의 추천을 받아 급전도감녹사給田都監錄事에 임명하였고, 이후 제주태수 정언 상주목사 전중소감殿中少監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 국자감대사성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상서우복야 한림학사 승지를 역임하고, 추밀부사로 1250년 몽골에 갔다가 와서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가 되었다. 그 후 수태사守太師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판이부사判吏部事를 지냈으며, 1258년 최씨 무인정권이 무너지자 수상으로 난국을 수습하였다. 학식도 뛰어났지만 특히 문학 평론 분야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며, 책 머리에 저자의 서문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인로李仁老가 여러 명현의 좋은 문장을 모아서 《파한집》을 완성했을 때 최씨 무신정권의 실권자인 최이가 소략하니 보완하라고 해서 추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권상에는 고려 태조의 문장을 비롯한 역대 명신들의 언행과 누정樓亭 역원驛院을 소재로 한 시 등 52편, 권중에는 이인로 이규보 등 선배 문인들의 일화와 시 문평 46편, 권하에는 21품品에 걸친 모범적 시구의 예시와 함께 자신의 시문론과 승려 기생의 작품 등 49편이 수록되어 있다.
주요 내용은 고려 말 시를 짓는 기법과 이에 대한 평가를 제시하면서 시의 품평 기준을 상上 차次 병病 3등급으로 설정하기도 하였고, 문장을 짓는 것은 도道에 입문하는 것이므로 도에 어긋나는 말은 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을 내세우면서도 글의 기氣를 살려 독자를 감동시키기 것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수필체의 시화들을 엮어 시구詩句, 취미, 사실史實, 부도浮屠, 기녀妓女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시론이나 시평 외에도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문제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각 문체文體의 발달과정과 특징 등을 설명하고 변려문騈儷文의 병폐에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시와 문을 나누어 기술하고 시대 순으로 서술하여 약하나마 문학사 기술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고려시대의 비평문학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