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表]
冊1 箴 銘 詩, 冊2 狀 疏箚, 冊3~冊5 疏箚, 冊6 疏箚 傳諭面啓, 冊7 行狀, 典禮私議, 冊8 告祝文 祭文 說 記, 冊9~冊10 簡牘, 冊11 墓道文 遺事, 冊12 讀書記 讀商書 楓嶽錄 冊13 公孤職掌圖說上 冊14 公孤職掌圖說下, 冊15 稽古編上, 冊16 稽古編下, 冊17 漫筆, 冊18 孝經外傳, 冊19 孝經章句攷異 內則集釋, 冊20 內則外記, 冊21 庸學讀書記, 冊22 白鹿洞規釋 方氏幼儀箴 勉學詩 附錄輓詩, 冊23~24 年譜
윤휴(尹鑴, 1617~1680)의 문집이다.
윤휴의 본관은 남원南原. 초명은 윤갱尹鍞. 자는 희중希仲, 호는 백호白湖 또는 하헌夏軒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윤효전尹孝全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 김덕민金德民의 딸이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에게 글을 배웠으나 거의 독학하다시피 하였다. 1635년(인조 13) 19세 때 10년 연장자이자 당대 석학이던 송시열宋時烈과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서 만나 3일간 토론을 할 정도로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남인이나 서인 등 당색을 가리지 않고 학문적 교류를 하였다. 1636년 만언소萬言疏를 지어 올렸으나 그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 항복하는 것을 보고 벼슬에 나가고자 하는 뜻을 접었다. 1674년(현종 15) 대의소大義疏를 지어 왕에게 올리면서 청나라에 대한 원한을 갚자고 하였다. 이듬해 정4품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의 직을 받았고, 이후 5개월 만에 대사헌에 오르고, 이어서 판서직을 몇 차례 거쳐 1679년(숙종 5) 9월 우찬성에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 경신환국의 정변으로 사사賜死되었다.
본래 당색에 구애받지 않았으나 예송논쟁으로 서인 측과 사이가 벌어졌고, 이후 남인으로 활약하였다. 기해예송 때 포의布衣로서 송시열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논박했고, 1674년 갑인예송 때에도 같은 기준에서 서인측 견해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남인으로서 허적許積을 중심으로 한 탁남濁南과는 입장을 달리해 허목許穆과 함께 청남淸南으로 분류된다.
12권 24책의 필사본이다.
1책에는 스스로 군자로서 광명정대光明正大하고 과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경계의 글인 〈箴銘自警〉을 비롯해서 〈戒辭〉 〈訟心箴〉 등이 있고, 명보明甫 송준길宋浚吉이 우락재라는 작은 집을 지어놓고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써준 〈우락재명憂樂齋銘〉 1편이 있다. 이 외에 시 237수가 있다. 시는 오언절구, 오언고시, 칠언절구, 칠언고시 등 다양한 형식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당대의 유명한 송시열 · 윤선거 등의 학자들과 차운한 시들이다. 시 가운데 〈수송영보酬宋英甫〉·〈차송영보운次宋英甫韻〉·〈방송영보불우訪宋英甫不遇〉 등은 서정성 뿐만 아니라 송시열과의 교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2책~6책에는 1656년(효종 7) 이후 청나라에 치욕을 갚아 주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승정원에 올린 장계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굴욕의 항복을 하면서 왕에게 올린 각종 상소문을 수록했다. 당시 전쟁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 그리고 효종 이후 북벌론이 제기되면서 치욕을 되갚고자 하는 조정의 분위기 등과 관련된 상소문들이다. 특히 많은 글 가운데 〈사대사헌소辭大司憲疏〉·〈우참찬사직소右參贊辭職疏〉 등과 같이 사직을 요청하는 상소문이 많다. 뿐만 아니라 〈논경적차論耕籍箚〉나 〈인한재청친도차因旱災請親禱箚〉와 같이 국가 정책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왕이 취해야 할 행동 등에 관한 건의사항들도 있다. 〈전유면계傳諭面啟〉는 왕이 내린 비망기의 내용과 면전에서 올린 계사啓辭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책7에는 행장과 전례사의典禮私議가 있다. 행장은 효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현종의 행장이다. 장문의 이글은 당시 고위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 지었으며, 현종 재위기간 동안에 발생한 예송 문제 뿐만 아니라 각종 상소문도 수록하여 관찬사료와 비교할만한 자료이다. 〈전례사의典禮私議〉는 효종과 효종비에 대한 복제문제를 두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 벌어진 논란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적었으며, 예론과 관련하여 다른 관료들과 폭넓게 주고 받은 글도 함께 수록하였다.
책8에는 고축문告祝文과 제문祭文 그리고 說과 記가 있다. 축문은 주로 집안의 사당에 고하는 글로서 20편이 수록되었다. 제문은 정랑 이찬李璨, 정자 이홍상李弘相 등 31편이 수록되어 있고, 성리학의 기초를 형성하는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인심도심人心道心에 관한 〈사단칠정인심도심설四端七情人心道心說〉 〈인심안불안설人心安不安說〉 등의 글과 〈춘소기春沼記〉 〈육우당기六友堂記〉 등 기문 7편이 있다.
책9~책10에는 간책簡牘이 수록되어 있다. 당대에 남인과 서인 등 당색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생각과 학문에 대한 견해, 예론에 대한 문제 등을 주제로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서 수록했다. 권사성權思誠 김태숙金泰叔,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이유태李惟泰, 윤증尹拯 등 다양한 인물들이 보인다.
책11은 묘도문墓道文과 유사遺事가 있다. 묘도문은 당시 교유하는 선비들의 부탁을 받고 그들의 조상에 대한 묘지명, 묘갈명, 묘표 등을 써 준 글들이다. 유사는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의 〈이통제유사李統制遺事〉를 비롯해서 정운鄭運, 송희립宋希立 원균元均 등 11명에 대한 흔적들을 글로 남겼다.
책12는 독서기讀書記 독상서讀商書 풍악록楓嶽錄이 있다. 독서기에는 《시경》에 등장하는 15개국의 민요를 정리한 〈국풍國風〉, 궁정의 연회 때 연주되는 〈소아小雅〉 〈대아大雅〉, 사람과 사물을 칭송하는 시인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서경》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독상서〉와 금강산 여행기를 기록한 〈풍악록〉이 있다.
책13~책14에는 공고직장도설公孤職掌圖說 上 下가 있다. 〈공고직장도설〉은 국왕이 중국 문왕과 무왕의 도를 참고로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내용을 뽑아 올린 것으로 《대대례大戴禮》와 한 나라 가의誼의 유편遺編 가운데에서 예전의 삼공三公과 사린四隣이 임금을 보도한 설을 찾아내어 경전經傳을 바탕으로 삼고 《사기史記》를 참고로 《서경書經》의 주관周官 한 편을 으뜸으로 삼아서 공고公孤와 경좌卿佐의 직장職掌을 드러낸 것이다. 〈인심도심도人心道心圖〉〈대학지도大學之圖〉〈중용지도中庸之圖〉 등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설로 만들어 수록하였다.
책15~책16에는 계고편稽古編이 상하로 나누어져 있다. 〈계고편〉은 반고盤古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등의 〈太古〉,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의 〈삼황三皇〉과 중국의 다섯 성군인 황제헌원黃帝軒轅·전욱고양顓頊高陽·제곡고신帝嚳高辛·제요방훈帝堯放勳·제순중화帝舜重華의 〈오제五帝〉, 중국 고대의 세 임금인 우왕 탕왕 문왕을 다룬 〈삼왕三王〉 등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밝힌 글이다.
책17은 만필漫筆이다. 국왕이 통치를 하는데 문치文治와 무치武治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중국 고대의 왕조들이 어떻게 문무를 활용하며 정치를 했는가에 대한 해석과 국가 통치체제에서 諫官의 역할, 제후국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저자의 생각을 폭넓게 고증하며 적었다.
책18은 효경외전孝經外傳이다. 〈효경외전〉은 인간이 지켜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있는데, 이를 공자가 《효경》으로 정리했다. 이후 《예기》나 다른 책들에서 효에 관한 논리를 기록했는데 저자가 이러한 모든 자료를 망라해서 효에 대한 해석을 정리한 것이다.
책19~20은 효경장구고이孝經章句攷異와 내칙집석內則集釋 내칙외기內則外記가 있다. 〈효경장구고이〉는 효경이 진나라 때 없어졌다가 한나라 당나라 때 다시 융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학자들이 본래의 경전을 첨삭함에 따라 달라졌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저자의 분석을 실었다. 내칙이란 남녀가 집안에 거처하면서 부모와 시부모를 섬기는 법을 기록한 것으로 《대기戴記》에서 나왔으니, 고경古經이며, 증자曾子의 말이 실려 있다. 이를 공자의 주석을 바탕으로 저자의 해석을 반영한 것이다. 〈내칙외기〉에는 관례와 혼례, 삼년상에 대한 저자의 생각 등을 적었다.
책21은 용학독서기庸學讀書記가 있다. 이 글은 저자가 《중용》을 읽으면서 장래 토론을 위하여 자신이 본 대로 대지大指와 서차序次와 장구章句 등에 관해 대략 적어 놓았던 것을 정리하여 놓은 것이다. 《중용》에 대한 해석과 읽는 요체를 설명한 것이다.
책22는 백록동규석白鹿洞規釋 방씨유의잠方氏幼儀箴 면학시勉學詩 부록만시附錄輓詩, 〈백록동규석〉은 주자가 학문을 가르칠 때 朱子白鹿洞規를 만들었는데 후학들이 이를 기본 규범으로 삼고 익혔는데 이에 대해 저자가 첨삭을 한 것이다. 저자는 정자程子가 “고시古詩는 이해하기가 어려우므로 지금 사람들이 하는 말로 별도의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이 조석으로 그를 노래하게 하면 틀림없이 도움이 있을 것이다.”고 하신 그 취지를 딴 것으로, 우선 주부자의 학규를 편篇 머리에다 붙여 백록동규 석의라고 하였고, 거기에다 방씨方氏의 유의잡잠幼儀雜箴 20편, 면학시勉學詩 24수를 부기하고, 이어 주부자의 감흥시感興詩 20편으로 끝맺음을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책23~24는 윤휴선생의 연보年譜가 수록되어 있다. 윤휴 선생의 평생 업적을 년도별로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윤휴의 저술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