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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集 : 卷1 古賦․古律詩, 卷2-3 古律詩, 卷4 開元天寶詠史詩, 卷5-18 古律詩, 卷19 雜著․上樑文․口號․頌讚銘, 卷20 韻語․語錄․傳, 卷21 說․序, 卷22 雜文, 卷23-24 記, 卷25 記․牒文․雜著, 卷26-27 書, 卷28 書․狀․表, 卷29 表, 卷30 表․牋․狀, 卷31 表, 卷32 狀, 卷33 敎書․批答․詔書, 卷34 敎書․麻制․官誥, 卷35 碑銘․墓誌, 卷36 墓誌․誄書, 卷37 哀詞․祭文, 卷38 道場齋醮疏祭文, 卷39 佛道說, 卷40 釋道䟽祭祝, 卷41 釋道䟽
後集 : 卷1-10 古律詩, 卷11 贊․序․記․雜議․問答, 卷12 書․表․雜著․墓誌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문집이다.
이규보의 본관은 황려黃驪, 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다. 아버지는 호부시랑戶部侍郎을 지낸 이윤수李允綏이다.
1184년부터 기성문인들인 강좌칠현江左七賢의 시회에 참석하여 시문을 익혔고, 1189년(명종 19) 사마시를 거쳐 이듬해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였으나 오랫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이후 32세에 사록겸장서기司錄兼掌書記로서 전주목全州牧에 부임하였다가 1년 4개월 만에 면직되었고, 1207년(희종 3) 직한림直翰林에 다시 임명된 후 1215년(고종 2) 우정언右正言 지제고知制誥로서 참관參官이 되었다. 이때부터 출세에 있어서 동료 문사들과 보조를 같이 하면서 쾌적한 문관생활을 만끽하였다. 이후 우사간右司諫 좌사간左司諫 보문각대제지제고寶文閣待制知制誥 태복소경太僕少卿 장작감將作監 한림학사시강학사翰林學士侍講學士 국자좨주國子祭酒 등을 거치면서, 1228년(고종 15) 중산대부 판위위사中散大夫判衛尉事에 이르렀고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였다. 이후에도 관직에 부침이 있었으나 최씨 무인정권하에서 보신을 위한 전형적인 문관으로 이권에 개입하지 않은 순수하고 양심적인 관직자였으나 소심한 사람이었다.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전집 41권과 후집 12권을 합하여 총 53권 13책의 목판본으로 아들 이함李涵이 1241년(고종 28) 8월에 전집前集 41권을, 그 해 12월에 후집後集 12권을 편집, 간행하였고, 1251년에 칙명으로 손자 익배益培가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교정, 증보하여 개간하였다. 이후 이익李瀷의 말에 의하면 자료가 소실되어 원본을 찾지 못하다가 일본에서 다시 구입하여 간행하였다고 하며, 현존하는 기록은 조선 후기의 복간본으로 추정된다.
전집 책머리에 이수李需의 서문과 연보가 실려 있고, 권1에는 외부畏賦 등 6편의 부와 시가 있으며, 권2∼18에 시, 권19에 잡저 운어韻語 어록, 권20에 전傳, 권21에 설 서序, 권22에 잡문, 권23 24에 기, 권25에 기 방문牓文 잡저, 권26 27에 서書, 권28에 서書 장狀 표表, 권29에 표, 권30에 표 전箋 장, 권31에 표, 권32에 장, 권33에 교서 비답批答 조서, 권34에 교서 마제麻制 관고官誥, 권35에 비명, 권36에 뇌서誄書, 권37에 애사 제문, 권38에 도량재초소제문道場齋醮疏祭文, 권39에 불도소佛道疏 초소醮疏, 권40에 석도소제축釋道疏祭祝, 권41에 석도소釋道疏 등이 차례로 되어 있다.
후집에는 이함의 후집서문에 이어, 권1∼10에 시, 권11에 찬 서序 기 잡의雜議 문답, 권12에 서書 표 잡저 묘지, 그리고 책 끝에 정지鄭芝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이규보의 뇌서와 이수가 쓴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고, 이어 이익배의 발문이 실려 있다.
시 중에는 장편의 민족서사시로 높이 평가되고 있는 〈동명왕편〉을 비롯하여 〈차운오동각세문정고원제학사 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 〈개원천보영사시 開元天寶詠史詩〉 〈정장시랑자목 呈張侍郎自牧〉 등 100운이 넘는 장편의 시를 비롯하여 민중을 미혹시키는 무당을 경계하는 뜻에서 지은 〈노무편老巫篇〉,
안녹산의 난으로 사직을 거의 망칠뻔했던 당나라 현종의 유적 등을 읊은 〈개원천보영사시〉 것이다.
이 외에 옛 시인을 모방, 답습하지 말고 새롭게 표현할 것을 역설한 시론詩論 〈답전이지논문서答全履之論文書〉, 가전체문학으로 의인화하여 기록한 〈국선생전 麴先生傳〉과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최치원의 전기를 책에 수록하지 않은 당나라 사람들의 편협성을 개탄한 〈당서불립최치원열전의唐書不立崔致遠列傳議〉, 이규보가 젊었을 때에 천마산에 은거하면서 자신을 그린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 《팔만대장경》 판각의 연혁을 알게 해 준 기록인 〈대장경각기고문大藏經刻祈告文〉, 고려 금속활자의 사용에 관한 사실을 알게 해준 기록인 〈신인상정예문발미新印詳定禮文跋尾〉 등 역사적 사료 가치가 높은 작품과 국문학적 의미가 깊은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