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규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공서公敍, 호는 긍암兢菴이다. 아버지는 강필형姜必炯, 어머니는 성산 이씨 이석좌李碩佐의 딸이다. 정종로鄭宗魯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87년(정조 11) 승문원을 거쳐 조경묘肇慶廟의 별검別檢에 제수되었고, 전적·현릉영顯陵令을 거쳐 1790년에 병조좌랑·이조좌랑과 공조정랑·예조좌랑·감찰·경상도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1793년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1797년에 지평·정언·기주관記注官에 임명되었다.
6권 3책의 목활자본으로 1853년(철종 4) 그의 증손 승형昇馨과 족손 연영連永이 편집,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김도화金道和가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연영과 승형이 지은 발문跋文이 있다.
권1·2에 시 312수와 만輓 43편이 있다. 식물이나 동물 등 자연 대상물을 주제로 읊은 시는 없으며, 대다수가 명승지에 모이거나 타인의 문집을 간행하는 시점에 선비들과 모여 나눈 차운시次韻詩, 贈詩, 送詩, 타인의 불행을 애도하는 만시輓詩 등이다.
권3에 소 2편과 서書 9편이 있다. 첫 부분에 있는 〈사장령소辭掌令疏〉는 임금이 항상 경연經筵에 적극적으로 임하여 옛사람의 교훈을 자주 접하고 심기를 바르게 하며 언로를 넓혀 백성들의 고통을 듣고 수령의 고과를 분명히 할 것과 과규科規를 밝힐 것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세도정치 하에서 나라의 국운이 바로잡힐 것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였다. 서書의 〈상입재선생上立齋先生〉의 〈의의문목疑義問目〉과 〈상례문목喪禮問目〉 2편에서는 성리설의 심心과 기氣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권4에 책策 1편, 서序 1편, 기 3편, 발 1편, 제문 9편, 뇌문誄文 1편, 유사 1편이 있다. 〈삼정책三政策〉에서는 군포軍布·전부田賦·조곡糶穀 등의 불공평함을 열거, 지적하며 구태의연한 것을 답습하기보다는 좀 더 현실화할 것을 논하면서, 국민이 잘 살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가 부강할 수 없다고 하였다.
권5는 부록으로 본인이 직접 지은 〈긍암명兢庵銘〉 1편을 비롯해서 후손들이 지은 행장 1편, 묘갈명 1편, 선비들이 지은 제문 29편, 뇌문 1편, 만사 67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