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손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여경餘慶, 호는 소총篠叢 광진자狂眞子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과거에 관심이 없이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다. 경經 사史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김수온金守溫 김시습金時習 남효온南孝溫 등과 특히 가깝게 지내면서 죽림7현을 자처하고 노자老子 장자莊子의 학문을 토론하며 시율詩律을 나누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제주도에 유배되고 노비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왔다. 76세에 처음으로 처를 맞아들여 아들 하나를 얻어 홍지성洪至誠이라 하였다.
2권 1책의 활자본으로 1810년(순조 10) 8세손 홍술조洪述祖가 편집,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이경일李敬一이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810년 홍술조가 지은 발문이 있다.
상권에는 문文을 수록하였는데 부賦 설說 서序 기記 증서贈書 묘갈명 묘지명 등 25편이 있다. 〈지주부砥柱賦〉는 격류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지주라는 산을 찬미하여 세속에 의연한 사군자士君子의 기상을 비유한 것이고, 〈정중자설正中字說〉은 정과 중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매사가 순리대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 것이며, 〈증김상사서贈金上舍書〉는 정치를 치병治病에 비유하여 백성을 덕으로 다스려야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안정될 것이라 하였고, 〈경연부經筵賦〉에서는 경연을 통하여 임금의 덕을 가꾸고 언로言路를 열며 부세賦稅를 적절히 할 것을 읊었다. 〈존자암개구유인문尊者庵改構侑因文〉은 불교의 인연론에 대하여 비유를 들어 상세히 설명, 화복禍福의 권도權度와 빈맹貧氓을 깨우친 글이다. 그밖에 〈문성부정묘지명文城副正墓誌銘〉은 세종의 5대손인 이상李湘에 관한 것이다.
하권에는 시 50수와 부록으로 행장과 유사를 수록하였고, 특별히 저자의 아들이 지은 《불정유고佛頂遺稿》를 첨부하였다. 시에는 〈동고팔영東皋八詠〉의 8수와 추강 남효원의 글에 차운하여 지은 〈부남추강차제附南秋江次題〉 8수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