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익(朴翊, 1332 ~ 1398)의 시문집이다.
박익의 본관은 밀양密陽, 초명은 박천익朴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이다.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박영균朴永均이며, 어머니는 능주綾州 구씨具氏로 좌정승左政丞 구위具褘의 딸이다.
고려왕조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郎 중서령中書令 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조판서工曹判書 형조판서刑曹判書 예조판서禮曹判書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에 다시 좌의정左議政에 임명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집 뒤의 산을 송악松岳, 마을을 송계松溪, 호를 송은松隱, 집을 송암松庵이라 한 것은 모두 송경松京의 ‘송松자’의 뜻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후에 좌의정에 추증되고, 밀양의 덕남서원德南書院과 신계서원新溪書院, 용강사龍岡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4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1837년(헌종 3)에 간행되었다. 책 머리에 홍명주洪命周의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조두순趙斗淳이 1837년에 지은 발문과 이가순李家淳이 1986년에 쓴 구본서舊本序가 있다.
권1은 유문遺文으로 시 30수와 문文 5편이 있다. 시에는 대향한 시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차운시를 비롯하여 증여시 만시 등이 있으며, 고려가 멸망한 뒤에는 고려 충신임을 자처하는 저자의 감회가 짙으며 시정이 더욱 간고簡古하다. 〈증포은운贈圃隱韻〉 등의 오언시와 〈희증상인戱贈上人〉 등의 칠언시, 〈희증도흠戱贈道欽〉 등의 칠언율시가 있고, 이색李穡 길재吉再 변계량卞季良 등과 수창酬唱한 시가 있으며, 김맹성金孟誠 정도전鄭道傳 조준趙浚에 대한 만시도 있다. 유문 가운데 〈입지잠立志箴〉 〈지신잠持身箴〉은 초학자初學者의 입지立志에서부터 처신에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해 교훈적인 명언을 모아 좌우명으로 만든 글이며, 유서遺書에는 ‘선천후천, 부자이시先天後天, 父子異時’라 하여 부자간에 지켜야 할 의리를 말하고, 자신은 고려의 유신으로 새 나라에서 벼슬을 받지 않았지만 아들에게는 새 나라를 도와 새 시대 개척에 참가할 뜻을 밝힌 내용이 있다.
권2∼3은 부록이다. 2권에는 시 3수, 만사輓詞 1수, 화상찬畵像贊 2편, 뇌묘소문酹墓所文 청시장請諡狀 시호삼망諡號三望 강시降諡 사제문 각 1편, 고유문 3편, 황희가 쓴 묘표, 황보인이 쓴 유허신도비속지遺墟神道碑續識, 서유사후書遺事後 청액상언請額上言 각 1편이 있다.
권3은 유태좌柳台佐가 쓴 행장, 실적實績, 유사, 이휘령李彙寧이 쓴 묘갈중건문墓碣重建文, 덕남서원 강당에 올린 상량문 각 1편, 봉안문 3편, 용강사 상향문 등이 있다. 시는 〈방밀양양박선생訪密陽兩朴先生〉 〈양박령공설소작兩朴令公設小酌〉 〈문선생적거방한영정聞先生謫居放鷳詠呈〉 등이다.
권4는 속집으로 신계서원영건실기新溪書院營建實紀 상량문 봉안문 상향문 각 1편과 이가순이 쓴 구본서舊本序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