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성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필경弼卿, 호는 산당서객山堂書客이다. 아버지는 사용司勇 최별崔潎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 되어 《소학》을 배웠으며 뒤에 정여창鄭汝昌의 제자가 되었다. 《소학》을 실천수행의 근본으로 삼았으며, 김안국金安國 남효온南孝溫과는 동문同門 사이였다. 영암靈巖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배향되었다.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1805년(순조 5) 후손 최도일崔道一이 속집을 엮어 전에 있던 원집原集과 함께 합편하여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1805년에 송환기宋煥箕가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685년 박세채朴世采가 지은 발문이 있다.
본 문집은 원집原集 2권 별집別集 1권 부록 2권을 합쳐 5권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잡저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에는 〈속원인續原人〉 〈소소학문讀小學文〉 〈독진학해讀進學解〉 〈정명론正名論〉 〈천당지옥변天堂地獄辨〉 등이 실려 있다. 이 중 《소학小學》에 관한 글이 3편 정도가 있는 것은 저자가 《소학》의 가르침을 생활화 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정명론〉은 군신과 부자의 名分을 바르게 함으로써 인륜을 밝히는 것이 중요함을 논한 것이
권2에는 서書 2편, 서序 기記 묘지墓誌 소疏 전傳 각 1편, 부록 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편지는 1487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점필재에게 佛巫의 폐해를 물리칠 것을 청하는 〈상점필재선생서上佔畢齋先生書〉와 1490년 中風을 앓을 때 전라도 관찰사에게 약을 구하기 위해 올린 〈상호남방백구약서上湖南方伯求藥書〉이며, 기문은 〈증실기蒸室記〉와 〈경려분각기警慮焚刻記〉로 中風을 치유하려고 힘쓰던 때의 기록이고, 〈산당서객전山堂書客傳〉으로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후에 지은 자전적自傳的인 글이다.
권3은 별집別集으로 초환유자문招宦遊子文, 잡설雜說 2편, 경회루기, 서序 1편, 묘비음墓碑陰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초환유자문〉은 1488년 과거에 응시하여 낙방한 뒤에 지은 것으로 부귀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을 권하는 내용이며, 잡설은 양재養材에 관한 글과 인仁을 통한 성재成材에 관한 글이다.
권4는 부록으로 후손 최종익崔鍾翼이 찬한 가장家狀, 송래희宋來熙가 쓴 행장, 송치규宋穉圭가 쓴 묘표, 저자가 향사된 녹동서원鹿洞書院에 관한 통문 축문 청사액소請賜額疏 등이 실려있다.
권5는 부록으로 영詠 7편, 저자의 손자 최언린崔彥潾의 시, 유사에 증손 최복남崔福男의 행장 2편, 이조원李肇源이 찬한 묘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