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에 출가하여 15세에 당나라에서 유식학唯識學 연구의 개척자인 법상法常과 승변僧辨으로부터 유식학을 배웠다. 이후 당나라 태종太宗의 도첩度牒을 받고 원법사元法寺에 머무르면서 소승경론小乘經論과 대승경론을 연구하였으며, 서명사西明寺에서 방대한 저술을 남겨 중국불교학계에 명성을 떨쳤다. 676년 박진薄塵 영변靈辨 가상嘉尙 등과 함께 《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등 18부 34권을 번역하였고, 《대승현식경大乘顯識經》의 번역에서는 책임자를 맡아 진행하였다.
이후 종남산終南山 운제사雲際寺에 암자를 짓고 8년 동안 선정禪定을 닦았으며, 만년에 다시 번역사업에 종사하였다. 693년 인도 승 보리유지菩提流志가 가져온 범본 《보우경寶雨經》을 번역하였고, 695년 실차난타實叉難陀가 우전국于闐國으로부터 와서 《화엄경》을 번역할 때도 참여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불수기사佛授記寺에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다비를 마치고 사리 49과를 얻어 용문산龍門山 향산사香山寺에 안치하였으나, 그 후 제자 자선慈善과 승장勝莊 등이 사리를 나누어서 종남산 풍덕사豊德寺에 사리탑을 세웠다. 다시 1114년예종 9에는 용홍사 인왕원에 거주하던 광월법사가 발원하여 서안부 함녕현西安府咸寧縣 번천樊川 흥교사興敎寺에 있는 현장법사 탑 좌측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옮겨 모셨다.
원측의 유식사상은 서명사를 중심으로 하나의 계파를 이루어 계승되었고, 그의 제자 도증道證은 692년효소왕 1에 신라에 귀국하여 원측의 유식학을 신라에 전했다. 원측의 사상은 태현太賢에게 계승되어 해동 법상종 성립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현재 중국 서안의 흥교사에 원측의 탑묘塔廟가 모셔져 있으며 그 안에 초상과 후대에 송복宋復이 지은 대주서명사고대덕원측법사불사리탑명大周西明寺故大德圓測法師佛舍利塔銘이 남아있다.
이 문집에는 저자가 쓴 《불설반야파라밀다심경찬佛說般若波羅蜜多心經贊》 《인왕경소仁王經疏》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불설반야파라밀다심경찬》은 저자가 《반야바라밀다심경》을 풀이한 주석서이자 불교서이다. 줄여서 《반야심경찬》 《심경찬》이라고도 한다. 불분권 1책의 활자본으로 근대에 일본각본으로 간행되었다. 주요 내용으로 교기인연敎起因緣은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펴게 되는 까닭을 밝히는 부분이고, 변경종체辨經宗體는 《반야심경》의 가르침의 본질을 밝힌 부분이며, 훈석제목訓釋題目은 제목을 해설하는 부분이고, 판문해석判文解釋은 《반야심경》의 본문을 해설하는 부분이다.
《인왕경소》는 저자가 중국 남북조시대 후진後秦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인왕경仁王經》을 풀이한 주석서이자 불교서이다. 6권 2책의 활자본으로 근대 일본각본으로 간행되었다. 인왕경의 번역에 6종種이 있음을 밝히고, 국토안온國土安穩과 국가융창國家隆昌의 방책이 불교의 본의本意에 있음을 논증論證하였다.
《해심밀경소》는 저자가 《해심밀경》을 풀이한 주석서이자 불교서이다. 10권 5책의 활자본으로 근대에 일본각본으로 간행되었다. 주요 내용은 모두 8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은 서품序品, 제2 승의제상품勝義諦相品, 제3 심의식품心意識品, 제4 일체법상품一切法相品 제5 무자성품無自性品 제6 분별유가품分別瑜伽品 제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제8 여래성소작사품如來成所作事品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