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李穡, 1328~1396)의 시문집이다.
이색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이곡李穀이다.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으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진사進士가 되고, 원나라에서 시행하는 과거시험에 여러 차례 합격하면서 이름을 날려 응봉 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 겸 국사원편수관應奉翰林文字承事郎同知制誥兼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고려에서는 전리정랑 겸 사관편수관 지제교 겸 예문응교典理正郎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藝文應敎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이부시랑 한림직학사 겸사관편수관 지제교 겸병부낭중吏部侍郎翰林直學士兼史館編修官知製敎兼兵部郎中이 되어 인사행정을 주관하고 개혁을 건의해 정방政房을 폐지하게 하였다.
1357년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를 거쳐 추밀원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 지공부사知工部事 지예부사知禮部事 등을 지내고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남행할 때 호종해 1등공신이 되었다. 그 뒤 좌승선左承宣 지병부사知兵部事 우대언右代言 지군부사사知軍簿司事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 보문각寶文閣과 예관禮官의 대제학大提學 및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등을 지냈다. 1367년 대사성大司成, 1373년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지고, 이듬해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 겸 성균관대사성知春秋館事兼成均館大司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퇴하였다. 1375년우왕 1 왕의 요청으로 다시 벼슬에 나아가 정당문학政堂文學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역임하였다. 1377년에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禑王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1391년에 한산부원군韓山府院君에 봉해지고, 1395년(태조 4)에 한산백韓山伯에 봉해졌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일파와 대척점에 섰으며, 성리학을 도입하여 현실에 적용하는데 노력하였다. 이색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名士와 조선 왕조 창업에 공헌한 사대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이숭인李崇仁 등은 고려 왕조에 충절을 다하였으며, 정도전鄭道傳 하륜河崙 윤소종尹紹宗 권근權近 등은 조선 왕조 창업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색-정몽주 길재의 학문을 계승한 김종직金宗直 변계량卞季良 등은 조선 왕조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저서에는 《목은문고牧隱文藁》와 《목은시고牧隱詩藁》 등이 있으며,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 청주의 신항서원莘巷書院, 한산韓山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寧海의 단산서원丹山書院 등에 제향祭享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55권 목판본으로 1626년(인조 4) 후손 이덕수李德洙가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1404년에 권근權近과 이첨李詹이 쓴 서문이 있다. 이어 저자의 연보 행장 신도비명神道碑銘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목은시고》 35권의 목록과 《목은문고》 20권의 목록이 각각 별책으로 구분, 정리되어 있다. 책 말미에 이덕수李德洙가 지은 발문이 있다.
《목은시고》 권1∼35까지는 사辭 조操 소부小賦 그리고 시 8,000여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양과 질에서 고려조에 유일한 대가로 평가할 만하다. 편차의 방식은 대체로 지어진 연대순을 따르고 있으며 시체는 근체 고체 오언 칠언 등 각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으며, 악부체樂賦體 또한 후인이 미치지 못할 만큼 절묘하게 구성하고 있다.
〈유감有感〉 〈독음獨吟〉 〈자영自詠〉 〈자조自嘲〉 〈술회述懷〉 등 시인 자신이 경험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표출한 것으로부터,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 등을 일고 느낀 점을 시로 읊어낸 것과 당시 사회에서 행해지던 풍속을 제재로 잡아 쓴 작품인 팔관八關, 관격구觀擊毬, 유두일삼영流頭日三詠, 구나행驅儺行, 단오석전端午石戰, 산대잡극山臺雜劇 등도 있어 시의 소재가 다양하고 매우 폭이 넓다. 이 외에도 자연 경치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부벽루浮碧樓〉 〈마니산기행摩尼山紀行〉 〈한산팔영韓山八詠〉 등도 눈에 띤다. 이색의 시문은 문학 작품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말의 지식인 사회와 정치 상황을 알아보는 사료로서도 귀중하다.
《목은문고》 권1∼6에 기記 75편, 권7∼9에 서序 39편, 권10에 설說 21편, 권11∼13에 표表 22편, 찬讚 11편, 잠箴 전箋 변辨 작作 후後 발跋 등 33편, 권14∼20에 비碑 명銘 전傳 등 35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 서거정徐居正이 쓴 〈목은시정선 서牧隱詩精選序〉와 기記가 수록되어 있다. 책의 편차 방식은 산문의 갈래에 따른 분류를 취하고 있다.
기문에는 누정기樓亭記에 해당하는 글이 많다. 지방 관아에 설치된 누정인 〈영광신루기靈光新樓記〉나 〈서경풍월루기西京風月樓記〉, 불교 사찰과 관련된 건물인 〈인각사무무당기麟角寺無無堂記〉 〈오대산상원사승당기五臺山上院寺僧堂記〉, 사대부들이 즐기는 누정인 〈훤정기萱庭記〉 〈영모정기永慕亭記〉 등이 있고, 〈둔촌기遁村記〉 〈양촌기陽村記〉 〈포은재기圃隱齋記〉와 같이 교유하는 지인들을 위해 쓴 글들도 있다.
서문序文으로는 서책에 붙인 글로서 〈익재선생난고서益齋先生亂藁序〉 〈급암시집서及庵詩集序〉 〈동안거사이공문집서動安居士李公文集序〉 〈농상집요후서農桑輯要後序〉 〈선수집서選粹集序〉 등과 지인들에게 보낸 송서送序 증서贈序 등이 있다. 설說 가운데 〈직설삼편直說三篇〉은 하나의 주제를 논변한 것이며, 〈관물재찬觀物齋讚〉은 이숭인李崇仁을 위해 쓴 글로써 사물 인식과 수양의 자세를 보여 준 내용이고, 〈척약재명惕若齋銘〉은 김구용金九容에게 좌우명을 삼도록 하기 위해 지어 준 글이다. 또한 비문이나 전기류에 관한 글도 많다. 이 자료는 당시 이색이 교유한 지식인과 정치 담당자들의 전기적 자료가 대부분이다. 정치 사회에 관한 원천적 사료라 할 수 있다. 이미 《고려사》의 기본 자료로 활용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