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의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호연浩然, 호는 둔촌遁村이다. 아버지는 광주 향리 이당李唐이다. 임심문任深文을 비롯한 60명에 달하는 많은 인물들과 시로써 교유하였고, 특히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과 친분이 두터웠다.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문장을 잘 짓고 지조가 굳기로 명성이 높았다. 1368년공민왕 17 신돈辛旽의 미움을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371년 신돈이 죽은 후 개경으로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川寧縣에서 전야田野에 묻혀 살면서 시를 지으며 일생을 마쳤다. 광주의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아들 이지직李之直이 편집하여 1410년(태종 10) 공주公州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이 책은 1451년(문종 1)에 손자 인손仁孫이 상주尙州에서 재간再刊하였고, 삼간三刊은 1686년(숙종 12)에 산양군山陽郡 봉갑사鳳岬寺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 부록을 붙였으며, 1846년(헌종 12)에는 보편補編을 더 첨부하여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는 하륜河崙이 쓴 서문이 있고, 시집 뒤에는 이인손李仁孫이 지은 중간 발문이 있으며, 책 말미에는 이후원李厚遠 이여규李如圭 이기백李基白이 지은 발문이 있다.
권1에는 시 192제와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체별로 칠언절구 120제, 오언절구 4제, 칠언고시 2제, 오언고시 3제, 칠언사운율七言四韻律 24제, 오언사운율五言四韻律 39제가 나누어 실려 있으며 저자의 소주小註가 쌍행雙行으로 실려 있다. 시의 내용은 대부분 기증시 차운시로서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도은陶隱 이숭인, 삼봉三峯 정도전 등과 주고받은 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증인시贈人詩에는 차운次韻이, 차운시에는 원운原韻이 각 편의 마지막 부분에 부기附記되어 있다. 부록에는 저자의 원시原詩와 차운시가 없는 여러 사람들의 차운시, 증답시贈答詩와 둔촌기遁村記 명자설名字說 송서送序 답사答書 등의 글이 실려 있다. 그의 시에는 꾸밈과 우회보다는 직서체直敍體에 의한 자연스럽고 평이한 작품이 많다.
2권 보편補編에는 후손 이항李恒이 쓴 행록行錄과 후손 이필행李必行이 지은 사우연원록師友淵源錄, 이휴징李休徵이 지은 묘갈문, 원우문院宇文, 아들 이지직李之直 이지강李之剛의 유고가 있다. 조선 초기의 간행본으로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