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린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修, 호는 독곡獨谷이다. 아버지는 부원군 성여완成汝完이며, 어머니는 밀직사지신사密直司知申事 나천부羅天富의 딸이다.
1341년 동정직同正職으로 사온서승司醞署丞을 받고, 1355년에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급제하여 국자학유國子學諭의 벼슬을 받았다. 고려 말 예문관藝文館의 공봉供奉, 삼사三司의 도사都事, 전의시典儀寺의 주부注簿 등을 거쳐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 삼사좌윤三司左尹 밀직사좌부대언密直司左副代言 지신사知申事 제학提學을 지내고 창원군昌原君에 봉해지고 바로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으며 문하부평리門下府評理와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후 조선 개국에 참가하여 단성보절찬화공신端誠保節贊化功臣의 녹권錄券이 내려지고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졌으며,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郎贊成事 개성부판사開城府判事 한성부판사 등을 지내고 원종공신이 되었다. 정종 때는 익대공신翊戴功臣의 녹권이 내려지고,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에 올랐다가 곧 좌정승이 되었고, 태종 때는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고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까지 올랐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2권 2책의 목판본으로 1859년(철종 10)에 후손인 성린호成鱗鎬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책 머리에 1456년에 서거정徐居正이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859년에 후손인 성린호가 지은 지識가 있다.
권1에는 태종 때 왕으로부터 궤장을 하사받고 올린 〈사궤장사전賜几杖謝箋〉 1편과 시詩 200제가 수록되어 있다. 시체는 다양하며 차운시를 비롯하여 지인들에게 보낸 송시, 증여시와 기행시 서정시, 불교적 요소를 간직한 시 등 다채로운 주제를 대상으로 노래하였다. 차운次韻 화답류和答類의 시로는 당시 문명을 떨쳤던 이행李行 하륜河崙과 주고받은 것이 많아 이들과 문학적인 교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 중에서 〈풍악楓岳〉은 금강산의 해 돋는 광경을 읊은 것으로 웅건하고 진취적인 기상이 담겨 있으며, 〈포훤첨하음성일절기정기우曝暄詹下吟成一絶寄呈騎牛〉와 〈차장사예시운次張司藝詩韻〉 등 술을 소재로 한 시도 눈에 띈다.
권2는 부록으로 김연지金連枝가 쓴 행장, 왕지王旨, 벼슬을 사양하는 소에 대한 왕의 비답인 〈치사시불윤비답致仕時不允批答〉, 사제문賜祭文, 저자에 관한 기록들을 명신록 등에서 뽑아 정리한 〈사실事實〉, 정종과 태종 때의 일을 기록한 〈본조사실本朝事實〉, 독곡연좌도찬獨谷讌座圖贊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