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이항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여구汝久. 호는 오봉五峰이다. 아버지는 증참의 채천서蔡天瑞이며, 어머니는 영양 남씨로 남국신南國臣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경상우병사 민영閔泳과 감사 심연沈演 등을 도왔으나 화의가 성립되자 경상도 함창咸昌 향리로 돌아갔다. 그 뒤 척화신으로 지목되어 1640년 김상헌金尙憲·조한영曺漢英 등과 함께 심양瀋陽에 잡혀갔다가 1643년에 돌아왔다. 1648년 그의 충의를 높이 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제수되었고, 이어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목천현감·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소촌찰방召村察訪·군자감주부 등을 역임하고, 1661년(현종 2)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어 치적과 진휼賑恤에 힘쓴 공으로 포상되었다. 그 뒤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를 거쳐 평시서영平市署令에 이르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3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1764년(영조 40) 권진응權震應이 지은 발문에 의하면 본서는 채명오에 의해 편집이 이루어졌고, 1867년(고종 4) 7대손 채시정이 지은 발문을 수록하여 간행되었다. 책 머리에는 1761년(영조 36) 박성원朴聖源이 쓴 서문, 1767년(영조 43) 정포鄭宲가 쓴 서문, 같은 해 송명흠宋明欽이 쓴 서문 등이 있다.
권1은 유문遺文으로 1637년에 올린 〈척화겸진수양소斥和兼陣修攘疏〉, 1640년에 올린 〈논복수설치소論復讐雪恥疏〉와 〈입번시사사이엄등물소入藩時謝賜耳掩等物疏〉, 김상헌이 1642년에 작성한 〈부도만상연명소附到灣上聯名疏〉, 1643년에 작성한 〈동귀소東歸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2는 부록으로 재종숙再從叔인 채득기蔡得沂와 조우신趙又新의 〈붕우증유시朋友贈遺詩〉, 채몽정蔡夢井, 허필許苾 신진망申震望, 채이복蔡以復, 채지명蔡之溟, 채지면蔡之沔 등의 〈오봉정사제영五奉精舍題詠〉이 있고, 만뢰輓誄로 홍주원洪柱元 등 29명의 〈만시輓詞〉가 있고, 윤세임尹世任 등 3인의 〈제문祭文〉이 있다. 유사遺事로는 1694년(숙종 2) 조세붕曺世鵬의 〈행장行狀〉이 있고, 이어 2년 뒤 1696년에 추가 작성한 지문이 부록되어 있는데, 증손 명오의 上言으로 채이항이 척화소를 올린 것이 알려진 지 60주년을 기념하여 사제賜祭한 경위를 정리한 것이다. 이 외에 묘갈명 1편과 묘지명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증포사실贈褒事實로 〈연설筵說〉, 김종수金鍾秀가 지은 〈시장諡狀〉, 〈치제문致祭文〉, 조세붕曺世鵬의 〈분황축문焚黃祝文〉, 증손 채명천蔡命千의 〈치제일지감시致祭日志感詩〉 및 대사헌 윤봉구尹鳳九 등 50명의 차운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