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차산次山, 호는 용헌容軒이다. 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강李岡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82년(우왕 8) 진사를 거쳐 1385년 문과에 급제한 후 사복시승司僕寺丞 예조좌랑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392년 조선 개국 후 지평이 되었고,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어 철성군鐵城君에 봉작되었고, 같은 해 공안부소윤恭安府少尹을 거쳐 대사헌으로 있다가 파직되었다. 이듬 해 복직되어 경기좌우도도관찰출척사京畿左右道都觀察黜陟使 승추부제학承樞府提學 평양부윤으로 1406년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 대사헌 판한성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08년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으로 진봉되었고 1414년 영길도도순문사永吉道都巡問使를 거쳐, 이듬해 예조판서를 거쳐 대사헌 판한성부사 병조판서 판우군도총제判右軍都摠制 우의정 등을 역임하고 좌의정에 올랐다. 명나라에 세 차례 다녀오는 등 외교활동과 내치활동에 고헌한 중신이다. 시호는 양헌襄憲이다.
4권 2책의 석인본으로 1957년에 간행하였다. 책 머리에 1475년에 정인지鄭麟趾가 쓴 서문이 있고, 책 말미에 1957년 이중구李仲久가 지은 발문과 권상규權相圭의 후서後敍가 있다.
권1~2에는 시 25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체는 다양하며 차운시 송시 증시 등이 있다. 장편으로 읊은 시는 없으며, 산 누각 사찰 등을 시제로 한 서정시가 가장 많다. 시제로 택한 정자 누각 동헌 등은 대부분 경상도에 위치해 있어 저자의 관직 생활과 관련된 듯하다.
권3은 소疏 17편, 차계箚啓 13편, 전箋 2편, 헌의獻議 5편이 실려 있다. 이것은 저자가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에 올린 글들을 조선왕조실록에서 뽑아 문체별로 구분하고 같은 문체 내에서는 시대순으로 편집한 것이다.
권4에는 증유贈遺 5편, 척록摭錄 3편, 그리고 부록이 실려 있다. 증유는 저자가 관찰사 및 평양부윤으로 있을 때 변계량卞季良이 써 준 시 〈방춘정불우訪春亭不遇〉 등 7수와 권근權近이 지은 글이다. 척록은 〈도학연원록道學淵源錄〉 〈대동운옥大東韻玉〉 〈가전세록家傳世錄〉에서 저자에 관한 기록을 뽑은 것이다. 부록에는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신도비명을 비롯하여 명게서원明溪書院 명호서원明湖書院 등 저자가 배향된 서원의 봉안문 상향축문 고유문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