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휴의 본관은 가리加利, 자는 휴휴休休, 호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다. 가리 이씨의 시조이다.
1252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1263년(원종 4)에 천거에 의해 경흥부서기慶興府書記에 보임되었다. 1273년에는 서장관書狀官으로 원나라에 다녀와 잡직령 겸 도병마녹사雜職令兼都兵馬錄事에 제수되었다. 충렬왕忠烈王 때에는 합문지후閤門祗候 감찰어사監察御史를 거쳐 우정언右正言이 되었으며, 이후 우사간右司諫 양광충청도안렴사楊廣忠淸道按廉使 동주부사東州副使 전중시사殿中侍史 등을 역임하였다. 1298년 충선왕忠宣王이 즉위한 후 특별 기용되어 지제고知制誥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를 거쳐 밀직부사 감찰대부 사림학사승지密直副使監察大夫詞林學士承旨로 치사致仕하였다.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敍事詩로 유명한 《제왕운기帝王韻紀》는 당대 신진사류新進士類들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4권 1책의 목판본으로 아들 이연종李衍宗에 의하여 편집되고, 조카사위인 안극인安克仁이 1360년(공민왕 9)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책 머리에 이색李穡의 서문이 있다.
권1∼4에 시 86수가 수록되어 있다. 시 앞 쪽에는 잡저를 편집했는데 잡문 1편, 기 3편, 서書 8편, 부 1편, 제題 1편, 행록 등이 실려 있다.
시는 원나라의 황후와 황태자의 책립 때 하진사賀進使로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지은 것인데, 자세한 주注와 서序를 병기하여 고려와 원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편지 가운데 〈여진양서기정소서與晉陽書記鄭玿書〉는 《제왕운기》의 조판에 대한 감사함과 오자 탈자에 관한 사항을 적은 글이며, 〈전중봉대부김방경답만월봉요요암신화상서前中奉大夫金方慶答滿月峯了了庵信和尙書〉는 요요암의 신화상에게 보낸 글로서 만법萬法과 원법圓法도 본래는 모두 공空하다고 부르짖는 불가의 사상을 인용한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상몽산화상사사법어上蒙山和尙謝賜法語〉 〈화상소기법어和尙所寄法語〉 등과 같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와 유불선儒佛仙 삼교가 모두 한 근원이라는 논설로 전개한 법어도 있다.